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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집주인이 일부러 월세를 안 받은 다음에 그걸 빌미로 가게를 비우라고 소송을 걸다니요. 주변 명동 상인들도 다 놀랍디다."

서울 중구 명동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홍아무개씨는 지난 4월 새 건물주에게서 점포를 비워달라는 소장을 받았다. 올해 1월부터 3개월 간 점포 임대료가 밀렸으니 기존 임대 계약은 해지됐고 자신은 가게를 비워줘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가 전 건물주와 계약했던 임대기간은 올해 12월까지였다.

소장을 받아든 홍씨는 그제서야 지난 3개월 동안 가지고 있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홍씨는 "지난해 말 건물주가 바뀌어서 월 임대료를 입금할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는데 '회사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월세는 보관하고 있어달라'고 하길래 그러고 있었더니 소장이 날아왔다"면서 "합법적으로 임대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계좌번호를 안 가르쳐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임대기간이 남아있는 세입자를 합법적으로 쫓아내기 위해 건물주가 다양한 형태의 임대료 수령거절을 동원하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 상가 임대차계약서에 통상적으로 들어가 있는 '3회 이상 임대료 연체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응용한 수법이다.

"'기다리라' 해서 기다렸더니 명도소송장...뒤통수 맞았다"

서울시 중구 명동의 한 골목. 홍아무개씨와 유아무개씨의 점포가 보인다.
 서울시 중구 명동의 한 골목. 홍아무개씨와 유아무개씨의 점포가 보인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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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씨의 점포가 입점해 있는 건물 주인이 바뀐 것은 지난해 12월. 새 주인은 온라인 의류 쇼핑몰인 '스타일난다'를 운영하는 '(주)난다'였다. 홍씨는 "주인이 바뀌고 나서 올해 1월 15일께 그쪽 회사에서 처음 사람이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건물 주인이 바뀌었으니 새 주인에게 임대료를 내야 했다. 그러나 난다에서 나왔다는 관계자는 계좌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홍씨는 "'아직 회사 방침이 정해진 게 없어서 나중에 알려드리겠다'는 대답만 받았다"고 했다.

홍씨네 점포 윗층에서 칼국수집 장사를 하는 유아무개씨도 같은 말을 들었다. 유씨는 "회사의 방침이 정해지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야 하니 그때 한 몫에 지불하면 된다고 해서 홍씨와 함께 월 임대료를 계속 모아두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임대차 계약 만료를 두 달 가량 앞두고 있었던 유씨는 재계약 여부에 대해서도 빠른 시간내에 입장을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새 주인쪽에서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3월 10일께 난다 측이 고용했다는 법무법인 관계자가 이들 점포를 찾아왔다. 세입자들은 이 관계자에게 집세를 어떻게 내면 되느냐면서 계좌번호를 다시 물었지만 역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불안해진 홍씨와 유씨는 3월 말 난다와 변호사 사무실에 월세를 낼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기다렸던 답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4월 중순에 두 세입자 앞으로 점포를 비우라는 명도소송장이 나란히 날아왔다. 결과적으로 월세를 체납한 지 3개월 만이었다.

명도소송이란 부동산 소유자가 자신의 부동산을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이를 상대로 명도를 법원에 청구하는 소송을 말한다. 상가 임대인-임차인 간의 명도소송의 경우 법원이 임대인 손을 들어주면 임대인은 임차인을 강제로 쫓아낼 수 있다. 홍씨는 "결과적으로 기다리라는 말을 믿고 집세를 쌓아놓고 기다리다 보니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고 털어놨다.

'스타일난다' "세입자 쫓아내려는 의도 전혀 없었다"

명동의 두 임차인은 (주)난다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계좌번호를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적으로 정당한 계약 해지 절차를 거쳐 점포에서 쫓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명도소송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난다의 오아무개 이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계좌번호를 주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명도소송에 이용하거나 세입자들을 계약기간 전에 쫓아낼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오 이사는 "우리는 잘 알려진 쇼핑몰인데 그렇게 시끄럽게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실이 알려지면 이미지 타격이 상당한데 무리한 수단을 동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계좌번호를 계속 알려주지 않을 경우 임차인들이 불안해 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 했느냐'는 질문에는 "계좌번호는 쇼핑몰 사이트에 노출되어 있으니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난다 측 명도소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관계자는 "명동 점포 중 하나가 이전 주인과 복잡한 이중 계약이 되어있었다"고 주장했다. 홍씨가 계약서상에 적힌 월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이전주인에게 건네왔는데 (주)난다는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법인이기 때문에 그런 불법 계약은 이어받을 수가 없어서 계좌번호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 점포에 대해 계좌번호를 건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참여연대의 김영주 변호사는 "최근 상가 바닥 권리금을 차지하기 위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임차인을 쫓아내는 임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한 경우는 건물주들이 아예 월세 계좌를 임시적으로 막아버리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은행에는 통장 주인이 요청하면 특정 계좌에서 돈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 악용하는 건물주들이 있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 경우 법에 민감하지 않은 임차인들은 '월세 이체가 왜 안 되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3달 후에 명도소송장을 받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법적으로 상가 월세가 '지참채무(직접 가져다줘야 하는 채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돈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세입자에게 있다는 뜻이다.

김 변호사는 "건물주가 잠적하거나 계좌가 막혔을 경우 세입자는 법원에 월세를 공탁하는 방법 등으로 명도소송 등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인이 수령거절 행위를 했을 때 해당 음성을 녹음하거나 인터넷 뱅킹 화면을 갈무리해두는 등 관련 증거들을 수집해놓으면 나중에 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태그:#스타일난다, #명도소송, #임대료, #임차인, #수령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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